The Country I love, Germany Germany: History, the Present and DesignNotes / Jan 2026, work in progress

독일에 관심이 생긴 건 아마 고등학생 때였을 것이다. 교수인 아빠는 방학마다 독일과 이탈리아에 있는 회사들에 자문을 하러 가신다. 유럽을 오가는 일이 아무래도 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나와 엄마는 함께 가지 못했고, 남동생은 두 차례 아빠와 함께한 적이 있다. 동생이 남자라 함께 가기 편했던 것도 한몫했다. 독일에 다녀온 동생은 종종 독일에서 살고싶다는 말을 했다. 아빠가 독일의 예측 가능성과 단정함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동생까지 독일에 빠져버리니 정말이지 독일은 나에게 늘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대학생이 되고 나에게도 독일에 갈 기회가 생겼다. 대학을 마칠 때 쯤인 2023년 봄이었다. 2019년에도 유럽을 한번 여행한 적이 있다. 독일이 워낙 크고 충분히 시간을 들여 돌아봐야 한다는 아빠의 권유로 당시에는 다음으로 미뤘었다. 그렇게 2023년 마침내 독일을 방문하게 되었고, 나 역시 독일과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사랑에 빠졌다'는 표현이 다소 유치하게 들려 다른 말을 고민해보았지만, 그만한 표현이 없다. 독일은 정말이지 나에게 사랑의 대상이다.

나는 복잡한 것을 단순한 개념으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내가 독일을 사랑하는 이유는 결코 간단히 말할 수 없다. 독일의 과거 역사와 현재의 모습, 그리고 디자인까지, 수많은 요인들이 얽히고 설켜 독일에 대한 나의 사랑을 형성한다. 어떤 요인은 크고, 어떤 요인은 작지만, 모두 중심 어딘가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그리고 이 요소들은 복잡하게 얽혀 있으면서도 결코 무작위적이지 않다. 내가 사랑하는 독일의 다양한 요소들은 서로 다른 분야에 속해 있으면서도 결국 하나의 가치관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 공통된 가치관이 이 모든 것들을 하나의 형태로 묶어 주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역사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나는 특히 나치 정권 시기와 그에 대한 독일의 반성적 태도를 담은 역사적 유적들을 좋아한다. 그중에서도 베를린데 위치한 홀로코스트 추모비는 특히 인상 깊다. 홀로코스트 추모비는 나치 정권 아래서 희생된 유대인들을 기리기 위한 공간이다. 네모난 형태는 비석을 상징한다. 쉽게 말해,이는 독일이 저질렀던 과거의 잘못을 상징화한 것이다. 특히 재밌는 것은 비석들의 형태와 땅의 구조다. 비석의 높이와 너비는 모두 제각각이고, 그 다양성이 주목할 만 하다. 이는 각기 다른 삶과 죽음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 하다. 땅은 중앙으로 갈수록 점차 낮아지고, 비석은 점점 높아진다. 그 사이를 걷다 보면 시야가 막히는데, 마치 길을 잃은 듯한 감각에 빠진다. 이는 곧 압도감과 고립감, 그리고 불안감으로 이어진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러한 설계는 의도된 것으로, 나치 정권 시절 유대인들이 느꼈을 불안을 방문객들이 신체적으로 경험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참 기가 막힌 설계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 사실을 미리 알고 간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비석 사이를 걷다 스스로 이상함을 감지했고, 이후 검색을 통해 그 의도를 알게 되었다. 그들의 설계 의도가 아무런 설명 없이도 나에게 그대로 전달되었다는 사실이 매우 놀라웠다.

또 하나 재밌는 것은 이 추모비가 도심 한복판에 세워져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 공간을 마주한다. 자신의 과오를 도시 한가운데 숨기지 않고 당당히 세워둔다는 게 참 대담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베를린이라는 도시의 분위기와도 맞닿아 있다. 베를린은 참 조용한 서울 같다는 인상을 준다. 카페와 쇼핑몰 등 즐길거리는 많지만 전반적으로 차분하다. 시끄럽게 웃지도, 쉽게 화를 내지도 않는다. 비가 자주 오지만 큰 불평 없이 묵묵히 일상을 이어가는 듯 하다. 이렇게 담담한 도시 한가운데 추모비가 놓여있었을때 느껴지는 그 전율은 결코 잊을 수 없다.

이 나치 사건과 관련된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란 개념도 참 좋아한다. 사유의 무능은 말의 무능과 행동의 무능으로 이어진다는 것으로, 누구나 악을 저질를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는 동갑내기 아돌프 아히히만이 나치의 지시를 받아 달리는 전차에 심을 폭탄을 만든 사건과 관련있다. 아히히만은 참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 그가 악한 만행을 저질렀고, 재판에서 그는 나는 돈을 받았기 때문에 위에서 시킨 일을 했을 뿐이라고 답한다. 재판관을 포함한 모두는 말을 잃었고, 이러한 그를 처벌할 방법도 없었다. 여기서 탄생한 개념이다. 번외로, 이 사건을 보고 나는 궁금증도 들었다. 과연 아히히만은 지옥에 갔을까? 신이 무능하게 만든 그를, 신은 어떻게 재판하였을까? 하여튼, 이 생각할 것이 많은 사건과 그녀의 개념을 좋아한다. 우연히 내가 사랑하는 이 개념은 독일에서 탄생한 것이라는 점도 흥미롭다.


내가 독일을 떠올렸을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분명 디자인의 철학을 형상화한 장소인 바우하우스와 그것을 하나의 문화로 만든 도시 데사우일 것이다. 바우하우스는 워낙 잘 알려져있어 데사우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데사우는 바우하우스의 철학과 조형적 요소, 타이포그래피가 일상 속에 스며든 도시다. 약국이나 마트같은 생활 공간에서도 바우하우스적 조형과 폰트가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어 도시 전체가 하나의 디자인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는 인상을 준다. 바우하우스 건물과 박물관이 물리적으로 떨어져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두 공간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 끝에 도시 전체를 바우하우스의 철학으로 브랜딩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건물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 전체를 매개로 철학을 확장한 것이다. (도시와 폰트를 연결한 데사우를 보며, 애플이 SF pro, New York 등 도시를 기반으로 폰트를 만들어온 방식이 떠오르기도 했다.)

바우하우스는 크게 바우하우스 박물관과 바우하우스 본관, 학생과 교직원들의 기숙사로 나눌 수 있다. 우선 역에서 가장 가까운 박물관에는 학생들의 습작이 전시되어있다. 형태와 질감, 비례와 색 등을 연구하기 위한 다양한 조형물과 스케치들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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